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주(州)의 주도(州都). 
1925년까지는 노보니콜라예프스크라고 불렸으나 기존의 시명(市名)은 니콜라이 2세에서 유래했다는 이유로, 소비에트 연방 성립 후 1926년 '새로운 시베리아의 도시'라는 의미의 노보시비르스크로 개칭되었다. 1893년 시베리아 철도가 오비강(江)을 횡단하는 지점에 소도시가 생긴 것에서 비롯되며, 그 뒤 농산물의 유통,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시(市)의 발전은 혁명 후 시베리아 개발에 따라 급속한 진전을 보였으며, 시베리아 최대의 공업도시를 이루고 있다.
1930년 이래 쿠즈바스로부터 원료를 도입, 금속가공을 비롯하여 전기·운수·농업 등 각종 기계제작이 성행하며, 수압기(水壓機)·공작기계·야금공장 등도 설치되어 있다. 또한 약품·플라스틱 등의 화학공업, 목재가공·식육·제분·유지 등 식품공업도 발달되어 있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시베리아 철도의 요역(要驛)으로, 바르나울·쿠즈바스 등지에 이르는 지선(支線)을 가진 교통의 대중심지이며, 하항(河港)도 있어 철도·항공·도로망의 결절점(結節點)을 이루고 있다. 1959년에는 출력 40만kW의 수력발전소도 완성되었다.
또, 문화의 중심지로 시내에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支部)를 비롯하여 9개의 대학과 연구기관·박물관·항공사진측량·지도학연구소·극장 등이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시의 남쪽 30km 지점에는 1959년 학술도시 아카뎀고로도크(Akademgorodok)가 창설되었다. 시베리아의 백만도시(百萬都市)로서 부근의 위성도시와 연결되어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주변 일대는 광범한 근교농업지대로 온실·온상 등을 겸비한 대 경영농업이 60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오비강(江)을 가로지르는 대철교는 1897년 봄에 완성되었으며 도시가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이다. 중앙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잇는 투르키스탄 시베리아 철도(Туркестано-Сибирская магистраль)가 개통되었는데 이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부터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잇는 노선이다. 그리고 이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시베리아 철도가 연결됨에 따라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잡았다. 철도 개통 전 8,000명 정도였던 인구는 이후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1917년의 러시아 혁명기에는 80,000명에 달하게 되었다. 러시아 내전기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도시도 피해를 입었으나 레닌이 신경제정책을 시작한 1921년에 이르러 도시 재건이 시작되었다. 1932~1933년의 소비에트 대기근(大飢饉)에는 17만명 이상의 국내 난민이 유입하여 도시가 더욱 확장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후의 1954년경에는 시베리아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으며, 시내에 노면전차가 개통했다. 도시 건립 약 70년 후인 1962년경에 노보시비르스크의 인구는 백만 명을 돌파하여 러시아의 백만 인구 도시 중 가장 빠른 성장을 보였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2,814km 떨어져 있으며, 중심가는 오비강의 우안(右岸)에 있다. 시 주변은 서 시베리아 평원이 둘러싸여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시설로는 1944년에 지어진 국립 오페라-발레극장(Новосибирский театр оперы и балета)이 있다. 이 극장은 러시아 최대 규모의 극장으로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Большо́й теа́тр)보다 크며, 시내의 레닌 광장에 위치한다.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는 시가지로부터 약 16km 거리에 있는 톨마체보 공항(Аэропо́рт Толмачёвo)이 있다. 러시아 제3의 도시답게 다수의 국제, 국내선이 운항하고 있다. 시내의 교통수단으로는 1985년 완공된 시베리아 최초의 지하철인 노보시비르스크 지하철(Новосибирский метрополитен)이 있다. 시베리아 철도는 지하철 역으로도 이어져 시내와의 연결성 또한 좋다. 지하철 외에도 18개 노선의 노면전차와 19개 노선의 버스가 운행한다.
기후는 연교차가 상당히 커 여름에는 기온이 섭씨 20도에서 25도에 이르며 겨울에는 영하 20도에서 30도까지 떨어진다. 엄동(嚴冬)에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